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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찔리는 듯한 통증"… 화가 '프리다 칼로' 괴롭힌 '섬유근통'이란?
강렬한 색채와 고통의 상징으로 알려진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 대표작 <부서진 기둥>은 칼로의 자화상으로 현실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림 속 칼로의 훤히 드러난 척추(기둥)는 산산조각 나있고, 온몸에는 못이 박혀있다. 한눈에 봐도 고통이 느껴지는 칼로의 눈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소아마비, 교통사고로 인한 전신 부상,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까지. 칼로는 약 45년이라는 짧은 생애 속에서 한 번 겪기도 힘든 고통들을 모두 마주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칼로를 괴롭혔던 것은 '섬유근통'이라는 질병이었다. 류머티즘내과 강은송 교수(고려대학교 안산병원)는 "섬유근통 환자들은 그 통증을 '전신이 멍든 것처럼 욱신거린다', '살이 화끈거리며 덴 것 같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반복된다'와 같이 설명한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극심한 고통은 칼로의 예술로 승화되었지만, 고통을 견딘 그녀의 삶은 그리 길지 못했다. 세기에 남은 작품들, 그 영감의 원천이자 고통의 근원이었던 '섬유근통'은 어떤 병일까. 칼로가 현대를 살았다면, 그 고통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을 안고, 강 교수에게 섬유근통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전신에 극심한 통증, 섬유근통… 불면, 인지 장애 등 심리적 문제까지
섬유근통은 섬유, 근육, 통증의 합성어로, 질환명 그대로 섬유조직과 근육에 발생하는 통증이 주된 증상이고, 수면 장애나 인지기능 저하,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신경정신적 증상도 동반되는 것이 특징이다.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30~60대 여성에게 발병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의 발병률이 남성보다 6~9배 높다.
유럽 류머티즘 학회(eular)에 따르면 섬유근통의 통증은 특정 부위에 국한되지 않고 몸 전체에 걸쳐 양측성으로 나타나며, 깊은 잠을 자지 못하거나 자주 깨고, 숙면 후에도 개운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두통, 과민성 대장 증후군, 배뇨 장애, 월경통 등 다양한 자율신경계 및 심리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섬유근통은 단순한 통증 관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심리적 요소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관리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강은송 교수는 "섬유근통은 단순 근육통의 수준을 넘어 대인관계, 직장 생활 등 일상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환으로, 우울장애나 류머티즘 관절염만큼 환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질환으로 평가된다"라고 전했다.
섬유근통은 전신에 통증, crps는 손발, 팔, 다리에 통증
섬유근통은 복합부위통증 증후군(crps,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과 증상이 비슷하다. 두 질환 모두 비정상적으로 극심한 고통이 만성적으로 나타나지만, 통증 발생 원인과 진행 양상은 명확히 구분된다.
강은송 교수는 "crps는 외상이나 수술 후 특정 부위에서 시작되는 국소 통증이 특징이며 손발, 팔, 다리 등 말초부위에 지속적으로 타는 듯한 통증이 나타나고, 말초에서 나타난 병태가 중추신경계로 확산되기도 한다. 반면 섬유근통은 대개 외상과 상관없이 발병하여 통증이 신체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crps에는 없는 수면 장애, 인지기능 저하, 우울과 불안 같은 심리적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운동 요법이 최우선… 무분별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은 지양
섬유근통은 혈액이나 영상 검사를 통해 명확히 진단하기는 어렵고, 미국 류머티즘 학회(acr)가 환자의 증상을 기반으로 제시한 평가도구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 평가도구는 통증이 있는 신체 부위의 개수와 피로, 수면 장애, 인지기능 저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섬유근통은 아직 완치를 목표로 할 수 있는 질환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질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진단과 치료 전략이 표준화되면서 증상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삶의 질을 회복할 수 있는 관리 중심의 치료 접근이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비약물적 치료가 1차적 치료로 활용된다. 걷기, 요가, 수영 등 저강도 유산소 운동이 가장 효과적인 접근으로 꼽히며, 인지행동치료(cbt), 스트레스 관리, 수면 위생 개선도 중요하다. 특히 환자 교육을 통해 질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증상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약물 치료로는 통증 감소와 수면 장애 개선을 위한 진통제, 항우울제, 신경조절제 등이 활용되기도 하지만, 단순 통증 경감을 위한 무분별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은 권장되지 않는다.
프리다 칼로가 현대인이라면?... 표준화된 진단, 치료법으로 고통 완화 가능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섬유근통에 대한 의학적 개념이 불분명했고, 환자들이 느끼는 통증도 '히스테리'나 '과민 반응'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섬유근통이 중추 감작성 통증 질환으로 정식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에 따른 진단과 치료법도 표준화되고 있다.
이에 강은송 교수는 "프리다 칼로가 살던 시대에는 통증을 '완화'보다 '인내'의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대에는 신체적 통증뿐 아니라 정서적 고통까지 포괄하는 통합적 치료 전략이 활용되고 있다"라며, "환자 네트워크, 자조모임 등 사회적 지지 자원도 있기 때문에 프리다 칼로의 고립감과 우울감 등도 심리사회적 접근을 통해 완화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칼로의 작품이 시대를 지나며 발전된 평가를 받았듯, 병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의학도 발전했다. 섬유근통은 아직도 완치가 어려운 질환이긴 하지만 칼로가 현대를 살았다면, 분명 그 고통을 덜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고통 속에 그려진 그의 수많은 자화상들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